선종불교의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말은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어 교리를 공부하거나 계행을 떠나서 직접 마음을 교화하고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직지사는 불교가 전래되 전에 짓어졌다하니
표교의 전진기지와 발상지의 역활도 했을 것입니다.
귀한 유물들 곳곳에 있었고 수선화도 엄숙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절은 임진왜란때는 왜구의들의 미움을 받아
불탔지만 조선의 왕실의 불심으로 다시 건립되었다 합니다.
템플스테이 강연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기에
신라의 전진기지가 아니라 오늘날에는 우리나라의
불교전진기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강문에는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은 한 여인의 애절한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떠돌이 승려가 경상남도 합천 땅의 마을 촌장 집에 시주를 받으려고 들렀는데 그 집의 무남독녀 딸이 승려에게 반해 상사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승려를 거두었고, 승려 역시 마음에는 없지만 여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혼인을 하여 처가살이를 했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아내는 아들과 자신을 두고 떠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목탁과 가사, 장삼을 내주었다. 이를 받아 쥔 승려는 다시 불심이 발동하여 야반도주를 했고, 전국을 수소문하던 아내는 남편이 김천 직지사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을 업고 합천에서 여러 날을 달려 지금의 금강문 자리까지 왔으나, 결국 아들과 함께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매년 부인이 죽은 날이 되면 직지사 승려들이 한 사람씩 불려 나가 부인이 죽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갔다. 이에 다급해진 절에서는 부인의 원한을 위로하고자 그 자리에 사당을 지어 해마다 기일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해, 도력이 높은 고승이 직지사를 찾았다가 제사 지내는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나무라며,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을 지어 여인의 원귀를 쫓아내라고 하여 지금의 자리에 금강문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직지사는 일주문과 금강문은 지나치게 멀고 반대로 금강문과 천왕문은 지나치게 가깝게 지어진 것이 다른 사찰과 차이가 나는데, 여인이 죽은 자리에 금강문을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향토문화 전자대전》
직지사는 오래된 사찰만큼이나 수많은 유물이 많이 있고 금강문 전설도 가슴아픈 사연이 아닐수 없습니다.
김천 직지사에 봄은 왔지만 봄도 그 엄숙함에 조용히 와 있는 듯 합니다.
좋은사람은 있는듯 없는듯 하지만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가 허전하듯 직지사를 떠나가는 마음도
그런느낌이라 할까요
언젠가 다시 오면 직지의 눈으로 다시 보기로
합니다.
밀양 표충사계곡에 있습니다.
http://자연풍경펜션글램핑.kr
'명소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마도여행의 소소한 이야기들 (0) | 2018.05.28 |
---|---|
당사 해양 낚시공원 (0) | 2018.04.22 |
아쿠아플라넷제주에 가다. (0) | 2018.01.23 |
제주도여행 첫째날 (0) | 2018.01.22 |
무인카페 금빛노을을 가다. (0) | 2017.09.20 |